9   2005-11-04   3721  
  白頭山아 天地여!!
白頭山아 天地여!!
무곡 최 석 화
(한국서도협회 이사)

한국서예인산악회(회장 김종태)가 124회 정기 산행으로 2005년 8월 12일에 광복 60주년기념 백두산 등정 5박 6일 산행에 본인도 참여하게 되었다.
단동페리호는 검푸른 바다를 옥빛 물결로 가르며 인천 국제 여객터미널을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 어느새 망망대해에 한없이 달리고 있었고, 부서지는 파도와 여객선을 따라 쫓아오던 백갈매기도 힘들었는지 끼륵끼륵 소리 치다가 차츰 차츰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서예인 산악회 회원과 가족으로 구성된 39명이 일행이다. 선상은 비교적 넓은 공간에 많은 이들이 정나누는 모습즐거웠다. 나라산의 할아버지격인 백두산을 나이 60이 되어서 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설레는 일이다. 맞은편 침실엔 '백두산에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글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초ㆍ중학생들 100여명이 백두산 등정으로 함께 있어 시끄러워 잠도 설쳤지만 16시간 운항 끝에 다음날 13일 아침 10시 30분에 단동에 도착했다.
부두에 내려 전세버스를 갈아타고 6시간을 달려 오후 4시에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통화(通化)에 있는 숙소까지 계속 달려야 했다. 버스가 너무 형편없었고 좁고 덥고 한데 도로까지 울퉁불퉁하여 너무 피로에 지쳤을때 압록강이 보인다'라고 누가 소리쳐서 밖을 보니 말로만 듣던 압록강에 강물이 가득차 흐르고 있었다.
첫눈에 들어온 다리는 서울의 제1한강교와 비슷한 모양을 한 다리가 압록강 단교라고 한다. 6.25때 끊어진 것이 그대로 있다. 강건너가 북한땅이라 하며 압록강은 상대국이 육지에만 올라가지 못하며 강은 같이 사용하여 친교의 강, 다리는 친선의 다리라고 한다. 철교의 길이는 946m나 되고 압록강 주변의 섬들은 170개나 된다고 한다. 수심은 깊은곳은 20m 나 된다고 안내양이 소개하였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압록강의 물빛이 오리머리 빛과 같다고 하여 압록강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압록강을 횡단하는 철도는 3개선이 있는데 가장 상류인 혜산과 창비이(長白)간, 만포(滿浦)와 집안(集安)간 신의주와 단등간을 달리는 철도등이다. 이중에서도 경의선과 안선선이 연결되어 광복전에는 대륙횡단 교통로로 각광을 받았다고 한다.
압록강은 길이가 803km이며 유역면적 6만 3160㎢(그중 한국에 속하는 면적은 만 1,226㎢)이고 함남풍산과 신흥군 경계에 있는 명당봉(明堂峰)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면서 지경천(地境川) 웅이강(熊耳江)을 합하여 혜산(惠산)에 이르러 유로(流路)를 서쪽으로 돌린다. 그러면서 허천강(虛川江)을 합하여 중강진(中江鎭)에 이른다.
7시간 정도를 달려 통화(通化)에 도착한 시간은 12시를 지나 새벽 1시경 화하상 무회관(華夏常務會關)이다. 늦은 저녘식사를 마치고 배정된 호텔방에서 3~4시간 고단한 1박을 하였다. 14일 아침 6시30분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상쾌하게 백두산을 향해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어제부터 오락가락하던 비는 더욱 쏟아졌다. 3시간쯤 달렸을때 '야 햇빛이다'하며 일행을 박수를 쳤다. 오랫만에 맑은 햇살로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장백현 장백리에 도착했을때는 지난밤 폭우로 인해 도로가 곳곳에 유실되고 낙석으로 교통이 통제되고, 우리나라 현실로는 통행이 불가능 할텐데도 양쪽 차선을 번갈아 가며 가까스로 갈 수 있었다. 장백산 입구에서 매표를 하고 한참을 달렸을때 다리가 유실되어 더 이상 갈 수가 없다고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하산하던 버스와 우리버스를 바꾸어 타기로 하고 도보로 유실된 다리를 건너 바꿔탄 버스로 신비로운 장백산(백두산)을 올랐다.
심한 비바람과 안개 때문에 왔다가 천지를 못보고 되돌아간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우리에겐 고생끝에 행운이 찾아온듯하다. 안개구름과 거센 바람이 걷히고 날씨가 갑자기 활짝 개였다. 1,340개의 돌개단을 오르고 또 올라 드디어 백두산 정상, 천지앞에 우뚝섰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모습으로 꿈에나 그리던 현실로 그 장엄한 천지의 모습에 소리없는 탄성에 내 자신을 잊는듯 했다. 그 장엄하고 신비로운 광경에 내 몸이 굳어버린듯 했다. 사진을 찍고 일행과 함께 정상주도 한잔했다. 중국과 북한땅의 경계지점이다. 중국, 북한 경비원과도 만날수 있었고 소주 한잔씩 나눌수 있었는데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30분가량의 짧은 시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돌계단을 내려오며 지천으로 활짝핀 야생화들의 환송을 받으며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백두산은 양강도(량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지린성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2,744로 북위 40。0.1, 동경 128。0.5에 있으며 한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백색의 부석(浮石)이 얹혀 있으므로 마치 흰 머리와 같다 하여 백두산이라부르게 되었다. 백두산에서부터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은 한국의 기본 산줄기로서 모든 산들이 여기서 뻗어내렸다 하여 예로부터 백두산을 성산(聖山)으로 숭배하였다. 북동에서 서남서 방향으로 뻗은 창바이산맥(長白山脈)의 주봉으로 최고봉은 병사봉(장군봉 2,744m)이다. 2, 500m 이상 봉우리는 16개로 향도봉(2,712m), 쌍무지개봉(2,626m), 청석봉(2,662m), 백운봉(2,691m), 차일봉(2,596m) 등이 있다.
15일 8시 30분 아침식사를 하고 고구려 두번째 수도였던 국내성(지금은 집안시)으로 출발, 광개토대왕비를 보기위해 떠났다. 날씨가 좋은편이라 호태왕비가 있는 주변은 벌판에 평화로운 기분이었다. 고구려 수도였던 우리의 땅이었다는 느낌인지 친근감이 있고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먼저 와닿았다. 익히 많이 알려졌고 서예를 하는 이들은 이미 호태왕비문을 임서해본 경험이 있어 더욱 관심이 많았다. 지금은 중국의 땅에 있고 더구나 그들이 역사의 왜곡으로 그들의 역사유적으로 만들려는 시점에서 볼 때 더욱 관심도가 높다. 뒤늦게 우리 정부나 역사학자들의 관심으로 보호하려는 비외각에 보호건물을 지어 그안의 웅장한 모습을 볼수 있었다.
광개토대왕비는 중국 지린성 지안현 퉁거우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의 능비(陵碑), 비신(碑身) 높이 5.34m, 각 면 너비 1.5m 호태왕비(好太王碑)라고도 한다.
414년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세운 것으로 한국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제1면 11행, 제2면 10행, 제3면 14행, 제4면 9행이고, 각 행이 41자(제1면만 39자)로 총 1,802자인 이 비문은 상고사(上古史), 특히 삼국의 정세와 일본과의 관계를 알려주는 금석문이다.
내용은 크게 ①서언(序言)격으로 고구려의 건국 내력을 ②광개토대왕이 즉위한 뒤의 대외정복사업의 구체적 사실을 연대순으로 담았으며 ③수묘인연호(守墓人煙戶)를 서수하여 묘의 관리 문제를 적었다.
광개토대왕릉 장수왕릉을 돌아보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졌던 고구려 때의 호태왕의 기상을 엿볼수 있는 기회였다. 다음으로 압록강에 와서 쾌속 보트에 승선하여 북한땅의 만포마을을 조망하며 사실상의 여행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5박 6일간의 중국여행은 오고가는 시간으로 대부분 허비하였으나 목표로 했던 백두산 천지의 관람과 호태왕비의 장엄한 모습, 그리고 압록강에서 바라본 북한땅의 모습들은 생전 처음보게 되어 가슴뭉클한 민족분단의 설움을 느꼈으며 이제는 우리 민족이 커다란 아픔없이 하나되기를 기원했다.



[출처 : 해동서예학회보 제4호]